역린(逆鱗)
역린(逆鱗)
  • 전주일보
  • 승인 2016.10.2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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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길 주필

역린(逆鱗),용의 몸에 붙어 있는 81개 비늘 중 딱 하나가 거꾸로 붙어 있는 비늘이다. 유래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법가사상 한비자 중 역린지화(逆鱗之禍)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 용은 생사여탈권을 쥔 나라의 왕을 지칭하고 있으나 직장에서의 사장 같은 지배층 또는 윗사람일 수도 있다. 이 권력을 쥔 사람의 눈에 들면 그들의 등에 올라 탈 수가 있다. 하지만 자리를 차지 했다하더라도 역린을 건드리면 그날로 끝이다.

문제는 이들은 자기들만이 역린을 가지고 있는 줄 안다. 천만의 말씀이다. 역린은 칼자루를 손에 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꾸라지도 부레가 있듯이 만만하게 보이는 오늘을 사는 민초들 역시 역린을 가지고 있다.

민초들이 가진 역린은 하나가 아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역린을 달고 산다. 지금 우리 민초들의 가장 예민한 역린은 부정입학, 병역기피, 취업부정 등이다.

그런데 이번에 아직까지는 이 나라에서 아무도 어쩔 수 없는 존재가 돼 버린 최순실 이라는 여자가 미르·K스포츠 재단과 관련 됐다는 의혹과 맞물려 자기 딸을 부정입학시키고 학점비리에도 손을 댔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 문제로 급기야 이대 총장은 사퇴했고 이어 보직교수도 전원 사퇴 의사를 밝힐 정도로 사건은 일단락이 됐지만 130년 전통 명문 사학의자존심은 구겨졌다. 이들 의혹들의 핵심은 재벌들이 800억 원 가까운 돈을 누구를 보고 낸 것인지 재단의 진짜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대통령과 최씨가 무슨 관계이기에 재단들이 최씨의 사유물처럼 됐는가에 문제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이들 사건은 그 정황이 점점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중인데도 이해 당사자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르쇠로 잡아 땐다.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염치없이 태연하다. 무릇 사람이라면 부끄러워 할만 일에 부끄러워하는 게 도리다. 도리(道理)는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할 바른길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도리가 실종이 됐다. 돈은 돈 따라 돌고 힘은 힘 따라 돌 뿐이다.

‘우리’라는 말은 말하는 이가 자기보다 높지 아니한 사람을 상대하여 자기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다. 지금 우리라는 사람들의 삶은 국가의 돌봄 없이 시장이라는 정글에 내던져져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더 언급 할 필요는 없겠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인은 여전히 가장 많은 시간 일을 하지만 잠을 가장 적게 자고 여가시간은 짧다. 가난한 사람은 OECD 국가 중 6번째로 많고 자살률은 최고이며 공교육비를 민간이 부담하는 것 역시 가장 높고 노인빈곤 율 역시 OECD평균의 3배에 이른다. 청년 취업난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정부의 정규직 대책은 뒷걸음질 친다.

승자독식, ‘각자도생’의 시대, 얼마 전만 하더라도 경제 여건상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지칭한 3포 세대에서 꿈마저 포기해버린 9포세대가 됐다. 너무나 우울한 신조어다. 이것은 이십대 세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삼십대나 그 이전 세대도 마찬가지로 다른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있다.

요즘 대중은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허기의 실체가 납득하지 못하는 일이 계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문화에 나타나는 과도한 쏠림현상을 보면 대중이 정서적으로 궁핍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대중은 자기개발을 통해서 계층상승까지는 아니더라도 목표설정을 하고 싶어 하는 욕망마저 포기하고 있다 무엇을 해도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좌절감이 대중의 일상을 허기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각오 없이는 세상살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행복을 맛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비샤이 말갈릿 말처럼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넘어서 보다 인간다운 사회, 품위 있는 사회는 권력에 의해 형성 된 제도가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고 그 권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사회다.

우리에겐 국가와 제도로부터 모욕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제발 숙덕공론으로 남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를 해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권부의 부패를 발본색원해야 한다. 여론이 정부를 향해 제기하는 여러 비리의혹에 대해 분명히 응답해야 한다. /고정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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