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右병우’라 쓰고 ‘憂病牛’라 읽는다.
'右병우’라 쓰고 ‘憂病牛’라 읽는다.
  • 전주일보
  • 승인 2016.08.2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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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원 편집고문

일찍이 이런 일은 없었다. 청와대의 일개 수석비서관의 거취를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고 정치동력이 꺼졌다. 우병우라는 블랙홀이 모든 현안과 정치적 관심을 모두 빨아들여 삼키며 국회를 마비시켰고, 청와대는 여론 따위는 아예 무시하고 우병우 지키기에 나선 인상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 수석은 청와대에서 같이 근무했던 이철성을 경찰청장 후보로 내정하여 국회 청문회장을 흔들었다. 물론 국회는 경찰청장 후보로 부적합하다는 판단으로 청문보고서조차 채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쩌면 대통령은 국회를 청문회 결과에 관계없이 그를 경찰청장에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보도가 나돌더니, 국회 정도는 우습게 깔아버리고 임명안에 재가해서 4시에 취임식을 한다고 한다. 우병우는 대통령도 어찌하지 못하는 존재가 아닐까?

야당과 언론이 입을 모아 우병우의 사임을 촉구하고 있지만, 본인이나 청와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니들이 떠들 테면 떠들어봐라.”식으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은 청와대와 주변인들을 감찰하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 수석에 대한 조사 방향 등을 발설했다는 이유를 들어 ‘국기문란’이라는 강경한 어조로 성토했다.

우 수석이나 이 감찰관 두 사람 다 대통령이 임명장을 준 사람들인데, 한 사람의 지저분한 의혹은 덮어두고 크게 문제되지 않을 일에는 흥분하는 대통령의 심중은 헤아리기 어렵다.

그 국기문란의 사건과 우 수석의 사건을 수사할 검찰의 특별수사팀장에 윤갑근 대구 고검장이 지명되었다는 소식이다. 윤 고검장은 우병우의 사법고시 19회 동기생이고, 과거 대검 특수부에서 우 수석과 나란히 근무했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윤 고검장은 정윤회 사건 때 ‘국정농단’을 수사할 책임을 맡았지만, 본연의 일은 덮어두고 문건이 유출된 문제만 파헤쳐 조응천 비서관을 기소하는 것으로 수사를 마친 경력이 있다. 보도에 따르면 그 때 우 수석의 뜻대로 일 처리를 잘(?)한 덕분에 대구고검장이 되었고, 우병우 비서관은 수석으로 승진했다고 한다. 그 사건 때에도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유출을 두고 ‘국기문란’이라며 흥분했던 적이 있다. 윤 고검장은 명예롭게도 ‘국기문란’ 사건을 도맡는 ‘국기지킴이(?)’가 되는 셈이다.

요즘도 흔히 쓰는 ‘안 봐도 비디오’라는 말이 있다. 윤 특별수사팀장의 수사가 과연 친구이며 후견인에 가까운 우 수석의 문제를 얼마나 파헤칠 수 있을 것인가? 언론들은 이미 이석수 특별감찰관만 기소되고 우 수석 문제는 증거불충분으로 흐지부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뭐, 언론이 아니어도 세상물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건너다보고 남을 일이니까.

24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자신의 페이스 북에 글을 올려 “대통령 민정수석의 진퇴, 특별감찰관의 직무 부적합 언행이 논란이다. 나라가 온통 이 문제로 시끄럽다.” “저는 두 사람이 대한민국 법치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위기감을 갖는다.”라며 두 사람의 사퇴를 요구했다.

여당 원내대표가 이 같은 주장을 펼 정도이면 청와대의 버티기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그는 또 “우리나라는 왕이 없는, 국민이 주권자인 공화국입니다. 주권자인 국민은 자신의 주권을 대통령과 국회에 잠시 위탁합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자신의 권한을 잠시 맡아둔 대리인에 불과합니다.”라고 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청와대를 제대로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그의 글 끝에 “선출직 공직자든 임명직 공직자든 임명권자는 국민입니다. ‘나는 임명직이니 임명권자에게만 잘 보이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은 교만입니다. 국민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는 공직자는 자신을, 자신이 몸담은 조직을,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민심을 이기는 장사는 없습니다.”라고 글을 맺었다.

어쩌다가 이 나라가 오늘의 절대 권력을 만들어냈는지, 온 나라가 청와대의 말 한마디에 떨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생각하게 하는 ‘양심선언’이 여당의 원내대표에게서 나온 일은 퍽 고무적이고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청와대는 ‘우병우 지키기’로 일관하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어느 만평에 우병우를 ‘右병우’라고 대통령 오른 쪽에 그린 것을 본 적이 있다. 사정정국을 멋지게 이끌어 정국을 장악하게 하는 우 수석의 존재감이 남달랐음을 보여주는 만평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憂(근심할 우)病牛(병우:병든 소)일 뿐이다. 우황(牛黃)이 들었는지, 구제역이 걸렸는지 모르지만 하루 빨리 처분해야 나라에 몹쓸 병이 퍼지지 않아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김규원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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