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으로 그리는 세상’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왼손으로 그리는 세상’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 고주영
  • 승인 2016.03.10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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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杞山) 고만식(高晩植) 화백, 인고의 예술세계

-16세 때 교통사고 당해 오른팔을 잃고 왼손으로 붓대 잡아

-좌절과 모진 삶 예술혼으로 승화시킨 집념의 화가

-외길 50년 맞아 ‘심상의 변천사’(心象의 變遷史)화집 출간 및 국내 5대도시 전시회 개최

 

“예술은 자기 내면을 형상화하여 표현하는 세계입니다. 지금도 그림의 길은 멀고도 높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낯선 타향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분야에 일가를 이루며 고향의 명예를 빛내는 전북인은 의외로 많다.

한쪽 팔을 잃었어도 좌절하지 않고 당당하게 예인의 길을 걸어온 기산(杞山) 고만식(71)화백도 자랑스런 전북인 가운데 한분이다.

서울 종로구 화실에서 만난 고 화백은 “고향을 떠나온 후 그림에만 미쳐 살았어요. 붓을 처음 잡은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반세기가 훌쩍 지났습니다. 돌아보니 긴 세월이었네요”라며 지난 50년을 회고했다.

고희(古稀)를 넘기면서 국내는 물론 중국까지 진출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고 화백은 호남의 명문 전북 전주 출생이다. 한국 동양화를 대표하는 화가로 국내 화단(畵壇)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명인 가운데 한분이다.

그는 평소 드러내기 싫어하는 과묵한 성격이지만 자신의 예술세계를 알리는데 만큼은 욕심이 많다.

고 화백의 작품은 설화 속에 나오는 우리의 옛것, 민화와 민속적인 것을 소재로 한 예술양식을 추구하면서 자연과 인간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세계적인 작가와 평론가들에게도 그의 작품은 이미 호평 나 있다.

일출송

▲ 교통사고로 오른손 잃고 왼손으로 붓 잡다

고 화백은 오른팔이 없다. 16세 때 교통사고로 화가에게 목숨과도 같은 팔을 잃었다. 혼수상태에서 18일 만에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오른팔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었는데 음식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절망했다.

그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야 그림을 그릴 수 있을 텐데 들어가지 않아 목 놓아 울었다”면서 50년 전 악몽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 화백은 오른손을 잃은 절망적 상황에서 모진 세상과 이별하고 싶었다. 그래서 세 번이나 목숨을 던지려했다. 매번 살아났지만 절망의 무게는 자신을 더욱 눌렀다.

그는 죽지 못해 사는데도 이상하게 그림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포기해야 하나, 그림을 그려야 하나를 고민하던 때. 아들의 그림실력에 기대를 걸던 어머니가 떠올라 '그림을 그리는 길만이 자신의 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결국 왼손으로 붓을 잡았다.

피에로의 염원

이후 고 화백은 우리나라 동양화의 대가인 현당 김한영 선생의 수제자로 입문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개척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 그림을 따라 그렸어요. 그러다 선생님께 심하게 꾸중을 들었지. 다른 사람 그림을 따라 하지 말라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너만의 그림을 그리라는 말씀이 지금도 쟁쟁합니다.”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도 좌절하지 않고 삶의 아픔을 예술혼으로 승화시켜 나갔다. 각고의 노력은 몽우리를 맺고 마침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만개(滿開)했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양팔을 가진 사람도 어려운 예술세계의 정상에 그는 당당히 우뚝 선 것이다

고 화백은 이후 국내외에서 개인전만 16차례 열었다. 현대미술대전, 신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등에서 많은 작품을 전시하며 명성을 쌓았다. 대한민국사회교육문화상도 받았다.

이런 ‘의지의 한국인’을 언론이 외면할 리 없었다. 그의 불굴의 의지는 KBS TV 다큐드라마 ‘이것이 인생이다’에서 ‘왼팔로 그리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의 가슴 저린 생애를 많은 이들에게 기억시켰다.

왼쪽부터  사랑 愛,   무희,  기혈절지도 팔곡병

▲ 한국인의 혼 담긴 작품 세계

고 화백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선 하나하나에 한국의 혼과 삶의 정신이 서려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연 속에 묻힌 인간이 아닌, 인간을 위해 자연이 존재하는 듯한 힘 있는 화풍은 고 화백만의 독보적 예술영역이다.

그의 그림은 산수화, 신선도, 달마도, 기명절지도, 괴석도, 인물화, 사군자, 십장생, 소나무, 원두막, 해학적인 그림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또한 표현의 폭이 넓고 크며,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 화백은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던 그는 2008년부터 활동 무대를 중국으로 옮겼다. 한국화의 대가로서 국내화단의 중심에 우뚝 섰던 그가 중국 대륙에 진출하면서 작품테마를 피에로(Pierrot)의 주제로 송두리째 바꿨다.

그는 자신이 그린 피에로에 인생사 희로애락이 모두 들어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자신의 삶 자체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슬퍼도 웃어야 하는 피에로처럼 장애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불굴의 의지가 담겨있다는 평가는 이런 배경에서 따른다.

고 화백의 삶과 화풍이 중국에서 알려지면서 한중수교 20주년 기념 등 2회에 걸쳐 우리나라 화가로서는 최초로 북경의 인민대회장에서 초대전을 성황리 마쳤다. 중국정부는 ‘한중문화교류 특별공로상’으로 고 화백의 노고에 화답했다.

왼쪽부터  동자승,   팬더와 피에로,  아이
왼쪽부터  골프,   이변

▲ 국내 주요 도시 전시회 개최

고 화백은 화력(畵歷) 50주년을 맞아 '心象의 變遷史"라는 큰 울림의 기념 화집을 출판했다. 여세를 몰아 올해 국내 5개 도시(서울,제주,광주,대구,부산)순회전시와 함께 출판기념회도 가질 예정이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주위 사람들은 이젠 편히 쉬셔야하지 않느냐고 권유합니다. 고마운 말씀이지요. 하지만 저는 하늘이 부르시는 날까지 붓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 전북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덧붙였다.

고 화백은 “모처럼 고향 언론과 만나니 정말 기쁘다”면서 “전주에서도 꼭 전시회를 갖고 전북발전과 후학양성을 위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수구초심인가. 고향소식을 듣는 노 화백의 눈에서는 소년 같은 맑은 기운이 번지고 있었다.

/서울=고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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